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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노트]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 김진홍목사님

by 주는지혜 2022.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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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

 

사회학에서 위기지수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위기지수란 한 나라의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기지수의 기준은 전쟁 상태가 백입니다. 6.25전쟁 같은 것이나,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전쟁 중일 때 국민들이 느끼는 정도를 위기지수백이라고 합니다.

유럽 사회는 위기지수가 23이고, 미국은 20이고, 일본은 30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특별합니다. 위기지수가 67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유럽 선진국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에 비해서 사회의 위기, 나라의 위기라고 느끼는 정도가 두 배를 넘어 67로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이 무엇을 그렇게 위기라고 느끼느냐? 위기를 느끼는 각 부분에 대한 내용이 참 특이합니다. 우리 정부 한 기관에서 수 년 전에 위기지수 첫 번째가 무엇이며, 둘째, 셋째...순번을 정해서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라고 느끼는 내용이 우리 생각하고는 영 다르게 나왔습니다. 무슨 북한 핵이라든지, 경제 위기라든지, 아니면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라든지가 아니라 가정의 위기가 첫 번째로 나왔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느끼는 우리나라 국가 사회의 위기가 북한 핵이 아니었습니다. 경제위기도 아니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는 것을 첫 번째 위기로 꼽았습니다. 두 번째는 각 이익 단체들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곧 사용주와 노동자의 노조와의 갈등 또 보수와 진보와의 갈등, 여당과 야당과의 갈등, 각 이익 잡단들 간의 충돌이 이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서로 간에 옥신각신하는 이것을 두 번째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북한 핵, 네 번째가 경제위기였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북한의 핵이라든지, 경제 위기가 첫째, 둘째일 것 같은데, 가정의 위기가 첫 번째다는 것은 중요한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가정의 위기가 그렇게 국민들의 몸에 느끼는 위기의 첫 번째가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 전문 사회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 전문가들이 거기에 대해서 깊이 연구를 해야겠지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런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극복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참 귀한 말씀입니다. 기독교 복음을 가장 짭게 그리고 쉽게 표현한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스트레스 받고 위기의식을 느끼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자들, 공황장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에는 장로님이고, 권사님이고 안수집사님이신데 남모르게 심적으로 고생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가정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가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어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시대를 거쳐서 정보 산업시대를 지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인생들의 고비 고비마다 여러 가지 과정속에서 흔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보이지 않는 위기 중의 하나가 인구가 감소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의료문제가 옵니다. 또 교회는 어떠합니까? 유년주일학교가 잘 안됩니다. 또 중교등부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위기도 함께 왔습니다.

2: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인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여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이란 말이 중요합니다. 남편은 나가서 직장 다니고 아내는 살림살이 하고 자녀키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그런 돕는 배필이 아닙니다. 성경에 돕는 배필은 천국까지 영혼의 순례길을 같이 걸어가는 믿음의 동지가 돕는 배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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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혼자서는 못 나와요. 하나님께서 코끼리나 원숭이를 통해서 건져내는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이 직접 구해낸 것이 아니라 하와 아내가 구덩이에 밧줄을 던져주고 아담씨! 그쪽 끝을 잡으세요. 내가 나오도록 당겨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돕는 배필입니다. 또 하와 아내가 구덩이에 빠졌으면 남편 아담이 구원해 주는 것이 돕는 배필입니다. 배필은 천국까지 같이 가는 길동무이고, 협력자이고 믿음의 동지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여자를 만드실 때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뽑으셔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말하자면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한 외과 수술을 하신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여인을 만드실 때 남자의 발가락에서 뼈를 취해서 지었다면 남존여비가 되겠지요. 만일에 아담의 머리뼈를 가지고 지었으면 여존남비가 되었겠지요. 요즘 그런 가정들을 사실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의 중간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남녀는 하나님 앞에서 대등하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존중하고 서로 높이고 대등한 위치에서 세상 끝날까지 같이 가는 길동무요, 믿음의 동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빗대를 취해서 여자를 지으시고 아내로 세우셨다는 것이 참 의미가 깊습니다. 언제나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고 하나님 앞에서 같이 협력자이고 조력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셔서 아담에게로 데려오니까 너무 감동해 가지고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다고 한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인류 역사상 맨 처음 나온 시라고 합니다. 인간 역사에 처음 등장한 시가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찬양하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다입니다. 여러분 각자 아내를 그렇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내가 옆에 앉아 있으면 새롭게 쳐다 보며 말해 보세요.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다, 그러면 또 부인이 고맙습니다. 그래야지 당신! 죽을 때가 됐나 와 이러노..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고, 그 다음에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부모를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하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오래전에 어머님께서 소천을 하셨는데, 살아 계실 때 잘해드릴 걸...너무너무 후회가 됩니다. 그러나 때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여러분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뵙고, 전화도 자주 드

리고 용돈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축복받는 길입니다.

 

에베소서 6장은 가정에 대해서 귀한 권면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5월 달만 가정의 달이 아니고 우리는 계속 가정의 달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십계명 중에서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인데 그 첫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땅에서 성공하고 장수하고 건강을 누리고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복이 어디서 오느냐? 부모님을 지성으로 공경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 살아계실 때 부모님 공경을 꼭 실천합시다.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말게 하라는 것입니다. 엄하게 가르친다고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는 무모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이 말이 참 중요합니다. 자녀들한테 소리를 빽빽 지르고 기죽이고 나한테서 어떻게 이런 자식이 났냐?’ 하는 부모님들 많이 있지요.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면 그게 쌓여서 자녀들에게 트라우마 상처가 되고 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한테 노엽게 하거나 상처를 주지 말고 자녀들과 부모 간의 깊은 대화로서 오해를 풀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가정학도 있지만 새로 대두하는 학문이 가족학입니다. 가정학은 주택, 음식, 의복, 환경 이런 것이 주제인데, 가족학은 가족들 간의 인간관계를 취급하는 학문입니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시부모와 며느리 관계, 사위와 장모의 관계 등 이 관계를 취급하는 학문입니다.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정학보다도 가족학을 귀하게 여깁니다.

미국의 버지니아주 사티어 교수란 분이 계시는데 가정학의 선구자입니다. 우리 가정에 가정문제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딱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이 네 가지가 잘 풀리면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정을 존중하고 바른 가치관과 자존감을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가족들 간의 의사소통입니다. 요즘은 가정이 대화의 장소가 못되고 무슨 하숙집처럼 가장은 직장생활에 바빠서 새벽에 나갔다가 밤중에 들어오면 자녀들은 자고 있고, 그래서 만나지도 못하고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니까 자꾸 가정 문제가 생기고 빗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정이 중요한 것은 가정예배지요. 가정예배를 통해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가족들 간에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예배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가장은, 내 사업이 어려운데 기도해 주라. 주부는 요즘 물가가 올라서 우리 생활비가 모자란다. 딸은 내일 시험인데 기도해 주세요. 아들은 몸이 안 좋은데 기도해 주세요. 등 자기 문제들을 내어놓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거기서 가족들 간의 소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오후 예배를 가정예배로 대체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 시간에 가족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대화하고 서로 간의 고충을 나누면 가족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가족들 간의 대화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화그러면 아주 삐딱하게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대화하자고 앉혀놓고 말하라고 하니 이상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애비한테 그런 말 하면 되냐?고 하니 대화가 아니고 대놓고 화내는 것이 대화다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화를 요청하십니다.

1:18“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대화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에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요, 기본이 되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변론하자는 대화하자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네가 잘하냐? 내가 잘하냐? 서로 한 번 터놓고 이야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막걸리 한잔하면서 그렇게 대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술은 안 먹으니까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조근조근하게 있었던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심리학적 통계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집, 어머니와 딸 사이에 친구같이 대화가 있는 가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엄마! 어떤 반 남학생이 나한테 연애편지 보냈어, 엄마 한 번 읽어 볼래요? 이런 소소한 문제까지 대화하는 가정의 자녀들은 문제가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문제가 생기느냐?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부모 자식 사이에 대화가 막히면서부터 자녀들이 빗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화란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1:18“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기적은 말할 것이 없고 인간관계에서도 대화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국민성이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싹싹하고 다정다감하고 참 좋은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대화를 잘 안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대화가 안 되니까 자꾸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아테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잘 아시죠? 그 사람의 교육 방법이 대화법입니다. 그걸 산파술이라고 합니다. 산파는 산모가 애기를 낳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산모가 애기 출산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소크라테스의 교육방법이 이와 비슷하여 산파술이라고 합니다. 대화를 통하여 청년들 속에 있는 고민이나 지식 어떤 가능성을 끄집어 내어 주게 한다는 것입니다. 산파가 애기 낳고 있는 산모를 도와주듯이 각자 속에 있는 가능성, 잠재된 능력, 고민, 아픔 등을 대화를 통하여 끌어내 준다고 하여 산파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교육 방식이 대화법입니다. 12 제자와 3년 동안 같이 동고동락하시면서 동생들같이 형제같이 대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16:13-17절에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6:26-34“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평범한 수준의 대화로서 깊은 진리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대화가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간의 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해보니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이 밤늦게 일하고 들어오면 아내가 아이고 수고했어요. 이러면 좋을 텐데, 밥상 차려 놓고서 다 식어 빠지도록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요. 소리를 빽 지르면 남편은 지쳐있고 위로받고 싶은데 아내가 큰 소리치며 인상 쓰면 좋겠습니까? 그러면 남편은 못생긴 얼굴에 인상부터 쓰는 것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잘생긴 여자한테 장가가지! 이렇게 되면 또 밥상이 날아가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니까 부부가 그렇게 생활하면 안 되지요.

 

여러분 자녀들 키울 때, 자녀가 학교 갔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으면 걱정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애가 오늘 왜 이렇게 늦어지나 걱정을 한참 하다가 자녀 방에 가보니까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보통 학교 다녀오면 엄마한테 학교 다녀왔다고 인사하고 방에 들어 가는데... 이때 엄마들이 센스가 있으면 애가 학교에서 무슨 문제가 있구나. 왕따를 당했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자기 아픔이 있을 때 세상만사 귀찮으니까 엄마 한테도 말 안하고 방으로 바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럴 때는 엄마나 아빠가 불러 가지고 차근차근 대화를 해야 되는데, 버릇없이 인사도 안 하고 들어가느냐 이렇게 해버리면 대화가 더 막히게 됩니다. 가정이란 삶의 복음자리이고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곳이며 새롭게 하는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버지니아 사티어 교수가 주장하는 가정의 문제 네 가지 중 세 번째는 가족들이 지켜야 되는 규칙 곧 룰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외도하지 않는다. 엄마는 가계부를 매일 적는다. 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의 주방일을 돕는다. 딸은 밤 9시가 넘어 들어오지 않고 늘 그 전에 들어온다. 아들은 토요일은 엄마를 도와서 청소를 한다. 그런 것을 가정예배를 통해서 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꼭 실천할 사항이다 라고 이걸 적어놓고 확인하면 가정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그 가정과 외부와의 관계입니다. 이웃과의 관계, 친척들과의 관계, 또 국민으로서의 어떤 책임이 있는가? 이런 것이 외부와의 관계입니다. 이 네 가지 속에 가정문제가 다 들어있는데 우리의 위대한 교과서는 성경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교회는 가정처럼 훈훈하고 따뜻하게, 가정은 교회처럼 거룩하고 신성하게 이루어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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