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7가지 표적
오늘은 요한복음에 나온 7가지 기적 혹은 이적이나 표적의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48),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9:5), 나는 양의 문이다(10:7, 9),나는 선한 목자다(10:11, 14), 나는 부활과 생명이다(11:25). 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5) 등 7가지 이적을 베푸실 때마다 영적인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성경적으로 왜 이적을 베푸셨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요2:1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둘째는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제자들 곧 모든 사람에게 믿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뀌게 하신 기적입니다(요2장1-12)
시골로 말하면 잔칫집에 막걸리가 떨어진 것입니다. 잔칫집에 막걸리가 떨어지면 낭패입니다. 우리 어릴 때 시골서 보면 잔칫집에 막걸리가 떨어지면 손님들은 계속 오고 막걸리는 모자라니까 ‘물 타라 물 타라 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손님들이 오전부터 마셨으니까, 오후가 되어 막걸리가 떨어질 때가 되면 취해서 막걸리인지 맹물인지 모르게 되는데, ‘물 타라 물 타라’ 뭐 그러한 식이 되는데,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물 타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잔칫집 주인이 낭패당하게 된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님에게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니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2:5-9“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 회장에게 갖다주어라 하시매 갖다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벌써 아들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6절에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은 무엇을 말할까요? 그 나라는 날씨는 더운데 물이 없어요.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거나 일 나갔다가 들어오면 먼저 입구에서 손과 발을 씻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손발을 씻으라고 항아리에 물을 채워 놓은 것입니다. 손발을 씻지 않고 들어오면 정결 예식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현관 입구에 항아리가 여러 개를 갖다 놓은 것입니다. 혹은 잔칫집이니까 항아리가 여러 개가 있지 않겠습니까?
6-10“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 회장에게 갖다주어라 하시매 갖다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아주 질 좋은 포도주로 바뀐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7가지 이적 중에 물로 포도주를 만든 가나 혼인 잔치 이적이 제일 먼저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는 잔칫집입니다. 교회는 초상집이 아닙니다. 신랑은 예수님, 우리는 신부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모일 때마다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신랑 예수님을 모시고 신부로서 잔칫집인 교회에 모인 것입니다. 귀한 모임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서 잔칫집에 흥을 돋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축제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당 다니는 게 고리타분하고 하품이나 하고 예배가 재미없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짜증 나면 헌금할 돈을 내지 않고 집으로 가다가 어묵이나 사 먹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두 가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데, 첫째는 공무원이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 둘째는 사업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이 이익을 남기지 못한 죄를 말합니다. 장사를 잘해서 이익을 남겨야 십일조도 내고 세금도 내고, 고용을 증대하고 국가 경제에 기여해야지 사업하면서 장사하면서 적자 보면 세금도 못 내게 됩니다. 그래서 용서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거기에 목사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데 교인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잔칫집처럼 신바람이 나야 합니다. 모일 때마다 즐겁고 흥이 나는 예배 시간이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다는 것은 질적인 변화입니다. 삶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물은 놔두면 썩습니다. 그러나 포도주는 두면 둘수록 값이 나갑니다. 포도주는 두면 둘수록 거기에 좋은 미생물이 번식해서 값이 나갑니다.
독일에서 있었던 얘기입니다. 어떤 주택에 지하실 공사를 하려고 지하를 파다가 지하철이 있어 입구가 막혀 몰랐는데 지하실 문을 열어 보니까 1500년대의 와인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1500년대의 와인이면 마틴 루터의 시대인데 500년 가까이 된 와인으로 금값에 팔렸다고 합니다. 포도주는 두면 둘수록 값이 나가는 것이지요. 성도들의 삶이 이래야 합니다.
요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신앙인은 가면 갈수록 좋아져야 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처음 사귈 때는 삼빡하고 매력이 있다 싶었는데 몇 달 지나 보면 아이고 그 사람 말은 잘하는데... 하면 안 되는 거지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이적을 행하신 후에 예수님이 거기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붙이셨습니다.
1-2절“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농부시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는 두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열매를 맺어야 하고, 둘째는 열매를 맺으려면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벌레 먹은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가지는 잘라서 불태우게 됩니다. 우리 성도의 삶은 열매를 맺는 삶이 되어야 하고, 열매를 맺으려면 삶이 깨끗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정직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치신 기적(4:43-54)
4:46-54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고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치유를 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이적입니다(요5장1-9)
요5: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절“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낫기를 원하지만 느려 뜨거운 물이 솟아오를 때 다른 사람이 가버리고 도움받을 길이 없다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겠지요.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8-9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님이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치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는 것입니다. 요10:7“나는 양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목자가 하는 일은 상처받은 자, 병든 자를 돌아보고 챙기는 것이지요.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3가지 목자가 있습니다.
첫째는, 절도 강도와 같은 목자입니다. 10: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간혹 교인 등쳐먹은 목자가 있습니다.
둘째는 삯꾼 목자가 있습니다. 10:12“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한 것입니다. 맨 날 월급 타령이나 하고, 연말이 되면 회계 장로님을 불러 월급 30%를 올려라. 장로님은 15%만 하시지요. 하면 제사장을 잘 섬겨야 복을 받지! 하며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삯꾼 목자입니다.
셋째는 선한 목자입니다(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겔34장은 목자장입니다. 여기에 보면 선한 목자가 해야 할 다섯 가지가 나옵니다. 이것을 충실히 아니하면 삯꾼 목자라는 것입니다.
겔34: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네 번째는 오병이어의 이적입니다(요6장1-14)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시고 12 광주리를 남기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5병 이어가 본질이 아닙니다.
6:5-7“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아이고 주님! 200만원 가지고도 이 사람들을 다 못 먹이겠습니다.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8-10절“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6: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하신 것입니다.
5000명에게 보리떡을 먹이시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끼 지나면 또 배고파집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시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시라 는 것입니다. 영원히 주리지 않고 영원히 배고프지 않은 참 생명의 떡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려 주시려 5병 2 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신 이적입니다(요6:16-21)
이는 예수님이 자연과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고치신 이적입니다(요9장1-7)
요9:1“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에게 실로암 연못가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실로암 연못가에서 씻었더니 소경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소경이 눈을 뜬 것은 중요한 일이기는 하나 본질은 아닙니다.
요8: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두움이 쫓겨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실로암 못가에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입니다(요11장1-44)
요한복음 11장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는데 지금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살아난 후에 몇십 년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려서 보여주시고자 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요11:23-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는 본질입니다.
43-44절“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굉장한 장면이지요. 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지 못하고 흔들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고 자꾸 흔들리고 아침저녁으로 믿음이 왔다 갔다 하면 영광을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요11:25-26“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활 신앙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11:23-2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는 사명. 둘째는 병든 자를 치유하는 사명. 셋째는 상처받은 자를 싸매 주는 사명. 넷째는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는 사명-두려움에 쫒기는 자 곧 공황장애자 괜히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불안에 떠는 자를 말합니다. 다섯째는 잃어버린 자를 찾는 사명입니다.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을 대표하는 구절입니다. 양의 목자가 하는 일은 잃어버린 자를 찾는 일입니다.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아흔아홉 마리 양의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의 목자장이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이적을 경험하든 않든 주님 품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이 변화되어 포도주가 되듯이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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